법인 가상자산 계좌와 수탁 시장의 제도화: 국내 금융권의 신성장 경로 분석
국내 가상자산 2단계 입법과 법인 계좌 개설 허용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시중은행의 디지털 자산 수탁(Custody) 사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회계 공시 기준 확립과 기관 인프라 경쟁에 따른 시장 변화를 심층 분석합니다.

가상자산 2단계 입법과 법인 참여 환경의 변화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1단계가 투자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에 집중했다면, 2026년 하반기 논의의 중심은 가상자산 발행·상장 기준과 법인 계좌 개설 허용으로 이동했습니다. 금융당국과 국회 정무위원회가 단계적 법인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면서, 전통 금융기관과 디지털 자산 수탁 전문기업 간의 시장 선점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90% 이상이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시장 변동성이 높고 자금 유출입의 제도적 안정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미국 등 주요국이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금 유입을 기반으로 시장 체질을 전환한 것과 대조적인 흐름입니다. 법인의 암호화폐 취득 및 보관이 양성화될 경우, 국내 디지털 자산 수탁(Custody) 시장 규모는 향후 3년 내 15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주요 은행의 수탁 인프라 구축 현황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 특정금융정보법 규제를 고려해 합작법인 투자 및 지분 참여 방식으로 가상자산 수탁 사업을 사전 준비해왔습니다.
- 한국디지털에셋(KODA): KB국민은행과 해시드가 공동 설립한 수탁 전문기업으로, 법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콜드월렛 보관 및 보안 감사 표준을 구축했습니다.
- 한국디지털컨센서스(KDAC): 신한은행이 참여한 수탁 컨소시엄으로, 다중서명(Multi-sig) 및 MPC(다자간 연산) 기술을 접목한 기업용 지갑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 글로벌 커스터디 파트너십: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비트고(BitGo) 등 해외 엔터프라이즈 수탁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바탕으로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은행권이 수탁 사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비이자수익 확대와 기업 고객 락인(Lock-in) 효과 때문입니다. 기업이 가상자산을 보유하거나 웹3 사업을 추진할 때 요구되는 회계 처리, 내부 통제, 자금세탁방지(AML) 인프라를 은행 기반 수탁사가 대행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수료 수익 구조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회계 기준 정립과 세무 리스크의 해소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에 있어 최대 장애 요인 중 하나는 불명확한 회계 처리 기준과 세무 리스크였습니다. 한국회계기준원(KAI)의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에 따라, 기업은 보유 가상자산의 경제적 실질에 맞춰 무형자산 또는 재고자산으로 분류하고 주석 공시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 공정가치 평가 및 손상차손: 활성시장이 존재하는 가상자산의 경우 매 보고기간 말 공정가치로 측정하며, 가치 하락 시 손상차손을 즉시 반영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 내부 통제 및 분리 보관: 제3자 수탁기관에 예치된 자산의 소유권 인정 여부와 파산 절연(Bankruptcy Remote) 구조 확보가 법인 감사의 핵심 요건으로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요건으로 인해 자체 보관(Self-custody) 방식을 채택하기 어려운 비금융 상장사 및 벤처기업들은 ISMS(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과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완료한 공인 수탁사로의 위탁을 필연적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향후 전망과 규제 과제
국내 가상자산 수탁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선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째, 법인 실명계좌 허용의 범위입니다. 비영리법인 및 가상자산 관련 법인부터 제한적으로 허용될 것인지, 일반 상장사로 즉시 확대될 것인지에 따라 초기 자금 유입 규모가 결정됩니다. 둘째, 은행의 직접 가상자산 취득 및 수탁 자회사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 여부입니다. 셋째, 기관 전용 장외거래(OTC) 시장의 제도화입니다.
제도화가 진전될수록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투기적 자산군에서 기관 포트폴리오의 대체자산(Alternative Asset) 및 법인 재무관리 수단으로 안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본력과 내부통제 역량을 검증받은 금융기관 중심의 수탁 생태계 재편은 향후 국내 핀테크 및 자산운용 시장의 판도를 가를 주요 변수가 될 것입니다.